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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석의 밴쿠버 리포트] 캐나다의 통신사업 외국인 지분확대 논란


 

캐나다는 서방 선진국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국가중 하나로 꼽힌다. 캐나다의 보수적인 성향은 정부의 경제정책 또는 산업정책에 있어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방송, 통신산업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직도 방송, 통신사업의 외국인 지분 한도를 20%로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방송, 통신시장 개방속도가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과 비교하더라도 얼마나 느린지를 잘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외국인도 방송, 통신기업의 지분을 100%까지 소유할 수 있다. 다만 전화사업은 연방통신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외국인이 미국의 방송, 통신 기업을 인수하고자 하는 경우 공익에 위배된다고 판단될 때는 정부가 이를 불허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캐나다 연방정부와 의회가 뒤늦게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통신사업의 외국인 지분 한도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 적지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캐나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얼마 전 앨런 록 연방 산업부 장관이 하원 방송통신산업위원회에 대해 내년 2월말까지 관련 법률 개정안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표면화됐다.

록장관은 캐나다의 통신 업체들이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자본을 조달하여 기술개발 및 시장확대를 모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외국인들의 투자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현행 통신기업 소유관련 법령을 전면 개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방송 및 케이블TV 사업 분야는 연방 문화부 업무 소관이어서 록 산업부 장관이 밝힌 외국인 지분한도 확대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현행 캐나다 통신방송법에 의하면 통신, 방송, 케이블TV 사업에 대해 외국인은 각 관련기업의 의결권주를 20%이상 소유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이들 사업을 2개 이상 거느리는 지주회사의 경우에는 외국인 지분한도가 전체 지분의 3분의 1로 제한되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록장관의 통신사업 외국인 지분 한도 확대방침은 미국처럼 지분한도를 아예 폐지할 것인지, 아니면 지분 한도를 일정 비율 확대할 것인지 아직 분명치 않다. 일단 하원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구체적인 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 같은 캐나다 통신산업의 외국인 지분한도 확대문제는 실은 어제 오늘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자본투자가 수반되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와 차세대 이동통신 서비스(G3)를 위해 해외로부터 자본을 유치할 수 있도록 외국인 지분 한도를 확대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해 왔다. 그러나 캐나다 정부는 외국인 지분을 확대할 경우 국가 통신망이 외국, 특히 미국의 손안으로 들어가게 될 우려가 크다며 이 같은 업계 주장을 묵살해 왔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캐나다 통신업계는 늦은 감이 있지만 해외 자본 유치가 가능해 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이번 정부 방침 발표를 크게 환영하고 있다. 토론토에 있는 AT&T캐나다의 크리스 피어스 대정부 및 규제업무 담당 부사장은 “정부가 외국인 지분한도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은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벨캐나다 모기업인 BCE Inc.도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 방침에 적극 따를 것이며 외국인 지분한도 확대는 캐나다 통신산업 뿐 아니라 전체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통신사업 외국인 지분한도 확대 방침에 대해 통신업계가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정부가 이미 때를 놓친 상태에서 뒷북을 치고 있다며 정부의 늑장행정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12년 전인 지난 90년 연방통신사업법을 개정할 당시 외국인 지분한도를 과감히 폐지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때 그런 조치를 취했으면 그동안 IT붐이 이는 과정에서 캐나다 통신기업들이 해외에서 많은 자본을 끌어들여 인프라확충 등에 투자함으로써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미국 AT&T의 경우 캐나다 법인인 AT&T캐나다에 대해 100% 투자를 허용해 줄 것을 누차 요구해 왔으나 캐나다 정부가 이를 불허함으로써 지금까지 33%의 지분만을 소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AT&T캐나다는 자본조달에 큰 애로를 겪어왔고 최근의 통신산업 경기침체까지 겹쳐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AT&T 외에도 캐나다의 크고 작은 많은 통신기업들이 전반적인 IT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자본조달 길마저 막혀 있어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으며 인프라 투자가 위축돼 생산성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만약 외국인 지분한도가 확대된다 해도 과연 해외 투자자들이 지금와서 캐나다 통신기업에 자본을 투자하려 들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만만치 않다.

캐나다 정부의 통신사업 외국인 지분 확대 방침과 관련하여 일어나고 있는 또 하나의 논쟁은 방송 및 케이블TV사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한도 문제다. 이번 앨런 록 산업부 장관의 외국인 지분한도 확대 방침은 산업부 업부 소관 분야인 통신사업 분야에 국한돼 있는데 이들 각 산업 분야간에는 이미 얽히고 설킨 상호투자 및 상호 경쟁관계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록장관의 방침 발표가 있은 직후 방송 및 케이블TV업계도 정부가 통신업계와 같은 조치를 취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 산업계 대표들은 통신, 방송, 케이블TV 등 3개 사업분야의 서비스 영역이 파괴되어 상호 경쟁체제로 들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통신사업 분야만 규제를 완화할 경우 이는 공정경쟁원칙에도 위배된다며 방송 및 케이블TV사업 분야도 동일한 규제완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 업계는 또 앞으로 국민들에게 고화질TV(HDTV),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그리고 인터랙티브TV 등과 같은 신기술 및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및 인프라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불가피하며 이는 해외 자본 유치에 의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캐나다 관련업계는 이러한 기술 및 서비스 개발을 위해 지난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약 55억 달러를 투자해 왔으나 현재로서는 더 이상의 투자여력이 남아있지 않아 해외 자본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업계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쉘라 콥스 문화부 장관의 정치적 성향으로 미루어 성사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콥스 장관은 야망이 큰 여성 정치인으로서 항상 국익과 캐나다 문화보호를 최우선시 하는 보수주의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성향을 반영하듯 콥스 장관은 캐나다의 방송이나 케이블 사업이 외국인 소유로 넘어간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며 이미 여러 차례 굵직굵직한 외국인 투자 허가신청을 캐나다 문화보호라는 명분아래 불허한 바 있다.

따라서 캐나다 방송 및 케이블TV업계의 주장이 정부에 의해 어느 정도 수용이 되어 외국인 지분 한도가 확대된다 해도 관련 기업의 경영권까지 외국인에게 넘겨줄 수 있는 정도의 지분 한도확대 조치는 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런 저런 상황으로 미루어 새해 캐나다 방송.통신업계는 외국인 지분 한도 확대문제를 놓고 격렬한 논쟁에 휩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특히 캐나다 연방 정부 각료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는 콥스 문화부 장관이 방송 및 케이블TV업계의 주장을 어떻게 수용해 나갈지 주목된다.

/주호석 리더스컨설팅그룹 북미담당 고문 hsju@can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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