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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의 실리콘밸리 메일] 실리콘밸리에서 본 한국의 희망(4)


 

[실리콘밸리는 미국의 성장 엔진]

실리콘밸리에 와서 "밸리가 어디인가"를 물으면 대답하는 사람이 쉽지 않다.

미국 사람들은 지명에 '밸리'라는 말을 쓰기 좋아하는 것 같다. 본래 뜻 그대로 산과 산 사이의 계곡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광의로 쓰여진다. 대륙이 광활하다보니 시선이 훨씬 넓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얼마 전 LA에 있는 친구가 사막에 꽃이 피었다 하여 함께 간 곳이 데스밸리, 즉 죽음의 계곡이었다.

실리콘밸리는 어떤 언론인이 신문에 쓰면서 시작된 말이라 한다. 지도상에 있는 남북으로 뻗은 긴 산맥 안의 지역이 이 곳이다. 물론 육안으로는 양쪽 산맥을 동시에 볼 수 없다.(실리콘밸리는 동쪽의 디아블로 산맥, 서쪽의 산타크루즈 산맥 사이에 있는 길쭉한 분지형 계곡으로 북쪽에는 샌프란시스코만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

크게는 샌프란시스코부터 산호세 남쪽까지를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샌프란시스코 남쪽의 산마테오 카운티와 산타클라라 카운티를 중심으로 말한다.

좁게는 산호세가 있는 산타클라라 카운티를 국한하는데 이 경우가 더 실질적이지 않나 싶다.

내가 있는 팔로 알토시를 비롯하여 인구 2만~3만에서 5만~10만 되는 고만고만한 도시들이 십 수개로 형성되어 있다.

이중 산호세는 샌프란시스코보다 인구가 조금 더 많은 78만이나 되는 거대한 도시다. 실리콘밸리에 총 250만명 정도가 살고 한국교포도 10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101번 과 280번 고속도로가 실리콘밸리의 동맥이다.

양 고속도로 사이에 엘까미노 레알이라는 국도가 있는데 서부에서 제일 오래된 길이다. 스페인 점령시절부터 선교사들이 미션을 세우기 위해 개척했던 길이다. 이곳 지명에 유난히 '산'과 '산타'가 붙는 성인(聖人)이름이 많은 것도 그런 연유다. 엘까미노 레알도 스페인 말로 '왕의 길', 즉 '예수님의 길'이란 뜻이다.

나는 엘까미노를 타고 한 30분 쯤 가서 교포 슈퍼에 들러 '맛나니 김치'를 살 때가 제일 재미있다. 땅이 비옥해서인지 야채 과일이 참 좋다. 상치류는 무엇을 찍어먹지 않고 날것으로 먹어도 맛있다.

실리콘밸리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미국에서 집값이 제일 비싼 동네이다. 팔로알토, 아테톤, 로스 알토스, 쿠퍼티노 같은 곳은 집값이 맨하탄보다 비싸다고 한다. 뜰이 넓고 대체로 목조집이지만 괜찮다 싶으면 100만 달러를 훌쩍 넘는다. 300만, 400만 달러짜리 집이 부지기수다.

값 비싼 동네의 또 하나의 특징은 학군이 좋다는 것. 이곳의 교육열은 한국 못지 않다. 이사는 좋은 학교 보내기 위해 하는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온 기러기가족을 중심으로 한 교육문제도 다루고 싶다. 귀국할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고 마음은 급하다.)

밸리지역의 인구는 백인이 40%, 아시아계가 30%다.(같은 계통의 두 가지 통계자료가 차이가 있어 그 중간선을 취했다. 실리콘밸리지역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실리콘밸리는 'IC밸리가 지배한다'는 말이 한때 나돌 정도로 인도(India)와 중국(China)사람이 많다.

로스앤젤레스와는 다르게 멕시코계(히스페닉)가 23%로 처지고 흑인은 3%로 아주 적다. 미국 전체 흑인이 13%인데, 그 반에 반도 여기에는 살지 않는 꼴이다.

또 미국에서 학력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고졸 이상이 83%고, 정규대학 졸업자가 40%를 넘는다. 연령분포도 특이하여 20대에서 40대가 전체인구의 50%를 상회한다. 대학생이 많고 외국의 고급두뇌가 많이 유입된 까닭이기도 하다.(한 예측통계자료를 보면 2020년엔 백인과 맥시코계(히스패닉)는 각 30.4%인데 아시아계는 35.8%로 본다. 백인보다 아시아계가 훨씬 많을 것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밸리지역의 경제적 내실을 들여다보자.

이곳은 1인당 평균소득이 5만4천500달러로 미국 평균(3만2천달러)의 1.7배다. 작년기준인데 2003년보다 3.5%증가한 수치다.

1인당 부가가치 생산규모도 18만8천 달러로서 미국평균의 2.2배다.

하이테크업체가 7천개가 넘는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추종을 불허한다. 미국 500대 하이테크업체 중 61개사의 본사가 소재하고 포춘(Fortune)이 정한 500대 기업 중 26개사의 본사가 이곳에 있다.

인텔, 시스코, HP, 선, 오라클, 애플, 에질런트 등 귀에 익은 세계적인 IT 업체들이다.

전체인구의 40%가 해외에서 왔다.(외국 출생인구는 2000년 32%에서 작년에 40%로 증가, 주민 다섯명 중 둘은 외국 태생인 셈이다.)

이들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급두뇌 형성에 일조했다.

벤처는 실패를 전제로 탄생한 기업이다. 이곳에서는 한두번 사업실패는 당연시한다. 오히려 실패를 통해 좋은 경험을 얻었다고 평가해준다.

벤처에 대한 지원 시 당연히 일절 담보가 없다. 인종차별도 미국에서 가장 덜하고 게다가 기후마저 좋다.

이러니 도전해 볼 만하지 않겠는가.

미국 전체 벤처투자 금액의 32%, 투자건수의 30%가 발생하는 이곳이 실리콘밸리이다.(2004년 4/4분기에 미국전체 벤처 투자액은 45억 달러인데 이중 32%가 실리콘밸리에 집중투자 되었다. 다음은 뉴잉글랜드 13%, 서든캘리포니아 11%, 포토맥 7% 순이다. 또한 2004년 4/4분기 미국 벤처투자건수는 총 479건이었는데 실리콘밸리가 30%, 뉴잉글랜드 14%, 서든캘리포니아 9%순이다.)

IMF 이후 우리도 벤처 붐이 일어난 적이 있다. 정부에서 적극 장려했다.

건실하고 창의적인 벤처도 적지 않았지만 정부지원을 받지 못한 대부분의 벤처는 쓰러졌다.

담보 없이는 돈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국의 비호(?)하에 성장한 벤처는 코스닥에 등록을 목표로 수십배 주식을 뻥튀기한 후 소리 없이 사라졌다.

소수의 비도덕적 행위로 인해 이 땅의 많은 젊은 벤처들이 좌절하고 희망을 꺾었다.

미국도 물론 벤처 거품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처럼 권력과의 친소에 의해, 또는 비도덕적 행위에 의해 거품이 발생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때 그 유망했던 젊은이들의 좌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분을 참기 어렵다.

이제 정말 이러지 말자. 제대로 한번 해보자.

실력과 능력에 의해 심판받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보자.

실리콘밸리가 투명하고 깨끗한 경쟁사회로 성장하는 것은 이곳의 날씨와 공기가 깨끗하기 때문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김형오의원 kho0505@stanfor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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