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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의 희망 메시지] 스탠포드에서 온 편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 출신으로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지낸 김형오 의원이 지난 3월 중순 훌쩍 스탠포드로 떠났다.

김 의원은 떠나면서 "실리콘밸리의 두뇌인 스탠포드에서 시끄럽지 않은 방식으로 연구하고 고민하다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 달간 외부와 접촉을 끊고 조용히 지내려 했으나 국내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해 현지의 소식을 전한다"며 기행문 형식의 e메일을 지인들에게 보내오고 있다. 스탠포드와 실리콘밸리 현지에서 보고들은 내용을 토대로 '한국의 희망'을 주제로 한 칼럼이다.

아이뉴스24는 이 칼럼을 '김형오의 실리콘밸리 메일'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기로 한다. [편집자 주]


[ 스탠포드에서 온 편지 ]

사랑하는 고국의 여러분께

보슬비가 3일째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이곳 스탠포드에 온지 2주가 돼가고 있습니다. 정말 어렵게 마음먹고 이곳에 왔는데 어마둥지 하는 사이에 열흘이나 훌쩍 지나다니....하루하루가 아깝게 생각됩니다.

지금 한국은 독도 문제, 지진문제를 비롯하여 여간 시끄럽지 않은데 혼자 훌쩍 나와 버려 송구한 마음 금할 수가 없습니다. 돌아갈 때까지 일체 외부와 접촉을 끊고 조용히 있으려 했는데 국내서 고생하는 동료들과 지역구민들에게 도리가 아닌듯하여 간단히 그동안의 전말과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자마자 시차 적응할 새도 없이 아파트를 얻으랴(여기서는 월세를 내는 곳은 아파트, 자기소유는 콘도미니엄이라 함) 먹고 살 세간거리도 장만하랴 할 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한국슈퍼에 가서 김치도 사고, 이곳은 산천이 명정한데도 물은 사먹어야 하기에 물통을 몇 개나 구입했습니다. 한국인 친구들 도움으로 이런 저런 기본적인 일을 하는데 4, 5일은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차 없이는 살 수없는 곳이라 자동차를 렌트하였습니다. 한국서는 별로 안하던 운전대를 오랜만에 잡으니 약간 긴장도 됩니다. 아직 고속도로를 나갈 정도는 안되고, 연구실과 동네주변을 왔다갔다 합니다.

내가 소속한 곳은 스탠포드대학의 부설기관인 아시아 태평양 리서치센터(APARC; Asia Pacific Research Center)입니다. 스탠포드대학의 명물인 후버탑(이 대학출신인 후버대통령내외를 기념하여 건립한 대학 내에서는 제일 높은 탑형식의 빌딩) 바로 옆의 엔시나홀(Encina Hall)에 있는데 이 대학의 모든 건물이 그러하듯 엔시나홀 역시 멋있습니다.

다만 내가 등록이 늦어 내 연구실이 반지하층에 배정되었는데 약간 불편합니다. 이달 말쯤에 3층 방이 비면 옮기게 될 것입니다.

비지팅 스칼라(Visiting Scholar)라는 ID카드와 방 배정받는데 며칠 걸렸고, 이메일 주소 받는데 다시 하루 걸리고, 내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는데는 다시 이틀이 걸렸습니다. 명함은 아직도 안나왔습니다.

이곳 사람들이 정확하긴 한데 속도는 한국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천천히 늦게 하는 경향입니다. 한국이 인터넷강국이 된 것도 우리 국민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kho0505@stanford.edu 이것이 내 이메일 주소입니다. kho는 내 이름 김형오의 이니셜이고 05는 내가 좋아하는 숫자입니다. 많이 이용해주시고 정보와 지식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홈페이지도 만들 수 있는데 실력도 부족하지만 많은 시간을 뺏길 것 같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기서는 뭐든지 본인이 직접 해야 합니다. 복사, 팩스, 전화도 각기의 ID카드로 해야 하고 도서관 출입증도 등록해서 받았습니다.

여기도 주차난이라 주차증은 돈으로 등급별로 내주고 있습니다. 나도 길을 몇 번 물어가면서 주차증 발급소에 가서 구입했습니다. 학생1만3천명(학부 6천, 대학원 7천), 교수 1천500명의 이 대학이 하도 넓어서 '팔로알토'가 조그만 도시지만 대학이 시 면적의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벼운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대학 내에 움직이는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자동차이고, 둘은 자전거이며 셋은 조깅하는 남녀입니다. 캠퍼스 내에 사통팔달로 도로가 나있기도 하지만 주정차는 물론 운전 규칙이 아주 엄격합니다.

교차로에서 'stop'표시판이 있는 곳은 무조건 섰다가 가야합니다. 차를 몬지 며칠 안 되었지만 이 룰을 어기는 사람 아직 못 봤습니다. 학생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다닙니다. 학교까지는 차를 몰고 와서 교내를 자전거로 다니는 학생도 있고 아예 자전거로 통학하는 이도 있는데 조깅하는 모습과 함께 참 아름답습니다. "밤낮없이 달리는 스탠포드"라고 말할 정도로 여기 사람들은 조깅에 참 열심입니다.

나도 자극받아 걷는 것을 접고 며칠 열심히 조깅하다가 발목관절에 심한 통증이 와서 다시 걷기로 하였습니다. 뭐든지 준비 안된 상태에서 무리하면 안된다는 교훈입니다.

내가 왜 뜬금없이 이곳 스탠포드로 왔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난 1년은 한나라당으로서는 건곤일척,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사무총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불명예스럽지 않게 약 1년간의 업무를 마무리하고 물러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요,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정치불신과 무관심, 냉소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중요당직을 지낸 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더구나 지금은 보수주의의 위기입니다. 개혁과 진보는 구호만큼의 내용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기의 전개와 더불어 정치환경의 급속한 변화가 요구되는데도 무엇을 어떻게 변화해야 좋을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나를 엄습했습니다. 국민과 유권자에게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될 때 온몸을 떨었습니다. 이대로 나를 속이고 국민을 속일수가 없었습니다.

미래를 제시하기는커녕 자기를 뒤돌아보는 것조차 게을리 하였습니다. 떠나야 했습니다. 새로운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용기가 없어 의원직은 던지지 못하지만 자신과 사회를 뒤돌아볼 수 있는 시간은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달을 목표로 하고 왔습니다. 그러나 두달 동안에 영어가 늘면 얼마나 늘겠습니까. 또 서부의 조용한 도시에 잠시 머문 나그네 주제에 미국사회를 어떻게 감히 안다고 논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서부터 고민해왔던 '보수주의'에 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숲속에 있으면 숲 전체를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보혁갈등이 심상찮게 야기되는 한국에서는 한쪽의 당사자로서 일방적 사고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곳을 택했습니다.

"위기에 선 한국 보수주의: 그 장래는 없는가?" 이것이 내가 던지는 화두입니다. 보수주의자로 자처하며, 보수주의의 정당성을 믿어왔던 나로서는 스스로의 당위성을 찾기 위한몸부림이기도 합니다.

특히 내가 강조해왔던 '글로벌리즘'과 '도덕성'의 1)구체적 내용(컨텐츠)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 2)이것을 보수주의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이곳은 실리콘벨리의 두뇌라 할 수 있고, 또 주변에 좋은 한국인, 훌륭한 동포와 교수들이 있기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혀 시끄럽지 않은 방식으로 연구하며 접촉하며 고민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두달 동안의 칩거가 현역정치인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지만 부족한 저 자신의 충전을 위해서도, 그리고 나라와 지역을 더 열심히 섬기기위해서도 헛된 일은 아니리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보고 많이 배워가겠습니다. 국내정정이 미묘하고 지역구에도 현안이 많습니다. 급박한 것은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처리하겠습니다.

저를 아끼고 사랑하시는 여러분의 성의에 항상 감사드리며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팔로 알토의 스탠포드대학에서 김형오 드림

/김형오의원 kho0505@stanfor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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